부산극동방송목회문화칼럼(two-three)

정발장군, “삼일교회, 너희들 정신차려!”

오늘은 바로 제가 목회하는 교회 삼일교회당 바로 앞에 서 있는 정발장군 동상을 보면서 느끼는 목회단상을 나누고 싶습니다. sixteen세기의 인물, 그것도 조선의 인물 그 동상을 보면서 무슨 목회단상이랄게 있을 수 있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. 하지만, 저로선 저희 교회당을 오고갈 때마다 그 경고의 함성을 이 정발장군이 번쩍 손을 들어올리면서 토하고 있는 듯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.

1592ë…„ 음력 4ì›”13일 1만8천명의 일본병사들이 800척의 ì œ1선단으로 제일 먼저 쳐들어온 곳은 바로 부산포였습니다. 현재의 정공단에 있었던 부산진성수군첨사영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정발장군이었습니다. 마침 영도에서 사냥 겸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다가 쳐들어오는 일본병선들을 보고는 황급히 부산진성 안으로 들어와서, 13척의 병선, 그리고 three hundred민호로 구성된 민군관이 총력을 기울여 항전하지만 ê²°êµ­ 장렬하게 전사하고 맙니다. 훗날을 기약하면서 도망을 ê°ˆ 수도 있었지만, 그렇게 í•œ 경상좌수영의 박홍 같은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싸우다가 죽고 맙니다. 왜적의 세력에서 사력을 다하여 국토와 가족을 지키려 하다가 순국한 것입니다. ê·¸ 뜻을 기려서 바로 부산역에서 부산진역 사이의 도로가에 ê·¸ 동상을 세워두었습니다. 역설적인 것은, ê·¸ 정발장군의 동상 바로 뒤에 일본문화원이 있다는 것입니다. ê·¸ 당시 일본을 상징하는 일본문화원을 바라볼 수 있는 부산진역쯤에 있으면 좀더 의미심장할 듯한데, 정발장군이 손을 들고 화살을 뽑으려는 ê·¸ 방향은 그만 ‘일본’을 비껴나 버리고 있는 셈입니다. 이 앞을 지나다니는 일본인들이 이 형국을 생각하면서 낄낄거리고 있지는 않는지 싶어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습니다.

물론 그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입니다. 하지만, 결국 1910년, 임진왜란이 있었던 때로부터 three hundred여년 뒤에 조선땅은 다시 한 번 일본에 의해서 정복당하는 비운을 당하고 마는 것을 생각할 때, 다시금 그런 일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져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. 우리는 과연 정발장군의 뜻을 잊지 않고 있는가?

기독교인으로서 유교문화권의 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정발장군을 아무런 비판없이 존경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. 장군이 전사할 때 장군의 애첩 애향이란 여인도 함께 최후를 맞이하였다 하니, 현대의 가정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라도 비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.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히 그의 의로운 기개, 곧 삼일교회 국토와 가정을 보호하고 맡은 소임을 자신의 생명으로 다하려고 했던 그 용기와 담대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. 왜적이 침입할 때에 이런 기개와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, 거짓된 교리와 신학이 교회를 침략하려고 노도처럼 밀려올 때, 바로 이런 기개와 용기가 요청될 것입니다. 그 시대가 다르고 그 동기는 달라도, 의를 위해서 희생하고자 했던 그의 덕을 추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.

정발장군은 순국정신의 상징입니다. ê·¸ 앞에 세워져 있는 삼일교회당은 순교정신의 상징입니다. 그것도 일제신사참배반대운동의 ì •ì‹ ê³¼, 해방이후 신사참배회개운동의 정신으로 삼일교회가 설립된 것입니다. 나라를 위하여 죽는 삼일교회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지만, ê·¸ 죽음의 저항정신이 일본과 관련된다는 것과 죽음을 불사하며 저항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비슷한 바가 없지 않습니다. 그래서인지 저는 교회당을 올 때마다 시선에 들어오는 정발장군동상을 ë³´ë©´ì„œ, 삼일교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. 임진란의 ê·¸ 고통을 당하였으면서도 다시 í•œ 번 더 침략과 유린을 당하였던 조선의 백성들처럼, 우상숭배의 과오에 다시 í•œ 번 더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? ‘일본신’이 ì•„ë‹Œ 바로 ‘나’라는 신이 오늘도 우리를 참배하라고 유혹하고 있을 ë•Œ, 정발장군의 오늘도 우리들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:“삼일교회, 너희들 정신차려!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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